선전자료[선전자료] ‘시민권 열차’에 타지 못한 저는 아직 승강장에 있습니다 / 박경석

2023-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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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권 열차’에 타지 못한 저는 아직 승강장에 있습니다 / 박경석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에게 보내는 박경석 대표의 편지
비장애인의 시각이 아닌 장애인의 입장에서 이 현실을 봐주십시오

2001년 2월 6일, 장애인들이 서울역 지하철 선로를 점거했다. 이 선로 점거를 시작으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진 장애인이동권연대

2001년 2월 6일, 장애인들이 서울역 지하철 선로를 점거했다. 이 선로 점거를 시작으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진 장애인이동권연대

- 그것은 제 개인적 비극이 아닌 장애인에게 가해진 구조적 차별이었습니다

2001년 1월 22일, 오이도역에서 리프트 추락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01년 2월 6일, 장애인들이 서울역 지하철로를 점거했습니다. 그 철로 위에 저도 있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저는 남대문경찰서에 연행되고 벌금 300만 원을 받았습니다.

이후로 셀 수 없을 만큼 연행되고 경찰 조사를 받으며 유치장과 구치소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때마다 경찰 조사에 대해 불응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각종 법률에 의해 재판받고 그에 따른 처벌을 받았습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22년이 흐른 지금도 왜 출근길 지하철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외치고 있을까요.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줄 것을 부탁드려봅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에는 장애인의 외출 빈도가 나와 있습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인구의 12.9%가 월 1~3회 외출하고, 32.9%는 주 1~3회 외출한다고 합니다. ‘전혀 외출하지 않음’도 8.8%나 됩니다.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로 지하철 철로를 점거했을 당시 ‘장애인 인구의 70.5%가 한 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한다’는 통계가 있었습니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는 당시의 조사와 비교했을 때,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많은 변화가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증장애인의 입장은 다릅니다. 아직도 집구석 골방에 처박혀 살고, 배제와 격리를 ‘보호’라고 치장하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중증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많은 변화’가 아니라 ‘지독한 차별이 지속되고 있으며 변화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읽힙니다.



2001년 10월 31일, 버스타기 투쟁 중 박경석 대표가 사다리를 목에 걸고 경찰의 진압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 장애인이동권연대

2001년 10월 31일, 버스타기 투쟁 중 박경석 대표가 사다리를 목에 걸고 경찰의 진압에 항의하고 있다. 사진 장애인이동권연대


저는 1983년, 24살에 행글라이딩을 타다가 떨어져 하반신마비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5년간 죽음을 생각하며 집구석 골방에 처박혀 살았습니다. 그때 저의 외출은 ‘죽어서 천당이라도 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눈물에 못 이겨 일주일에 한 번 교회 가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니까 5년간 저의 외출은 월 4~5회였습니다.

2001년 이동권 투쟁을 하며 ‘장애인의 70.5%가 한 달에 5번도 외출하지 못한다’는 통계를 봤을 때, 그 현실은 제 개인의 비극적 경험이 아닌 ‘장애인이 겪는 뼈저린 구조적 차별’의 문제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현실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살아가는 중증장애인들은 친구를 만나려면 일주일 전에 장애인콜택시를 예약해야만 합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은 고속버스와 시외버스는 아예 탈 수도 없습니다. 이 비참한 경험을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기준으로, ‘그나마 이거라도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살기를 강요당하고 있는 게 장애인의 현실입니다.

법과 상식, 공정이라는 기준에 대해 이 사회에서 지독한 차별을 감당해야 하는 중증장애인의 입장에서 한번 바라봐 주십시오.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보는 것과 시민권이 박탈된 차별받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입니다.

지난해 7월 19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용산서 정문 앞에 있다. 정문에는 장애인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은 용산서를 규탄하는 피켓들이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지난해 7월 19일,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용산서 정문 앞에 있다. 정문에는 장애인편의시설을 제공하지 않은 용산서를 규탄하는 피켓들이 붙어 있다. 사진 하민지


-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님, 경찰청의 불법은 왜 처벌하지 않습니까?

김광호 서울경찰청장님이 취임 뒤 연 첫 기자간담회에서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반드시 사법처리 하겠다”고 한 발언은 우리에겐 협박이었습니다. 우리는 법을 어겼다며 수많은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 처벌을 피해 간 적도 없고, 앞으로도 피해 가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왜 국가는 법을 지키지 않습니까? 국가는 그 스스로 만든 법을 지키지 않는데, 왜 여기에 대해 어떠한 처벌도 이뤄지지 않습니까?

1997년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아래 장애인등편의법)’이 제정됐습니다. 26년간 그 법을 어겨온 공공기관인 서울경찰청, 이제라도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라도 장애인등편의법을 지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해주십시오. 26년을 장애인들은 ‘관용’의 마음으로 기다렸으니 더 이상 서울경찰청 산하 경찰서에 ‘정당한 편의시설’ 설치를 미루지 말고 전수조사와 이행계획을 밝혀주십시오.

그리고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요구해 주십시오. ‘3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2024년 정부예산에 서울경찰청 이행계획과 관련한 예산 반영을 검토하라’고 해주십시오.

추경호 장관이 3월에 응답한다면, 저는 3월에 자진출두해서 조사받겠습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 중이다. 그의 뒤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강혜민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발언 중이다. 그의 뒤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사진 강혜민


- ‘시민권 열차’에 탑승하지 못한 저는 아직 승강장에 서 있습니다 

이제 저의 나이는 64살이 되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지하철을 타지 못한 채 이렇게 승강장에 서 있습니다. 지금까지 장애인들에게는 무정차로 지나며 ‘비장애인만 탑승시킨 시민권 열차’에 타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출근길 지하철을 탔습니다.

저는 이 사회에 묻고 싶습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습니까?’

이동하지 못하고, 이동하지 못해 교육받지 못하고 노동할 기회도 없어 감옥 같은 시설이나 골방에 처박혀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십시오.

자기 부모에게 새벽에 망치로 맞아 죽고 스카프로 목 졸라 죽임을 당해야 했던 중증장애인이라는 존재는 누구입니까?

가족에게마저 버림받아 감옥 같은 시설에 갇혀 사는 삶이 ‘정당하다’고 외치는 권력 앞에서, 헌법에 따라 국내법과 동일하다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명시된 탈시설 권리조차 휴지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주했을 때의 그 비참함을 느껴보십시오.

전장연은 ‘누구도 배제되지 않은 세상(Leave No One Behind)’을 위해 싸워왔습니다. 이것은 유엔이 정한 지속 가능한 세상을 향한 목표를 담은 슬로건입니다. 

골방에 처박혀 살아가는, 감옥 같은 거주시설에 격리되어 살아가는 중증장애인 한 명이라도 남겨두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권리는 인간 존엄에 관한 것이며, 지속 가능한 세상을 향한 인류의 간절한 소망이자 실현 가능한 목표여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마저 외면한다면 장애인, 우리들의 존엄함은 누가 지킬 수 있습니까.

인간의 존엄한 권리는 대체 누가 지킬 수 있단 말입니까. 


[비마아너 기사] '시민권 열차'에 타지 못한 저는 아직 승강장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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