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는 삶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제 삶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 그런 점에서 장애인 운동은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네 탓이 아니라 어른들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반 어린이들 대신 얘기해주는 것 같아요.”
“(장애인 운동이) ‘무사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거기에 앞장 서 주시라고.”
장애인운동의 안정적 공간마련을 위해 1구좌(100만 원)의 후원을 해 주신 소중한 벽돌회원 인터뷰 꼭지 입니다. 네 번째 인터뷰는 수십 년동안 장애인 운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셨던 공진하 벽돌회원님입니다. 공진하 회원님은 현장에서 장애아동과 함께 변화를 꿈꾸는 특수교사 겸 동화작가이시기도 합니다. |
착하지 않은 특수교사, 순진하지 않은 동화작가, 느리고 게으른 러너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7년차 특수학교 교사입니다. 트위터 소개 글에는 ‘착하지 않은 특수교사, 순진하지 않은 동화작가, 느리고 게으른 러너’라고 적어두었습니다. 뒤에 “탈시설!!!”이라는 말도 적어두었습니다.
- 평소에 취미나 관심 있거나 좋아하시는 일은 어떤 것이 있나요?
취미라기보다 집 앞에 달리기 좋은 공원이 있어서 달리기를 가끔 합니다. 말 그대로 느리고 게으르게, 5.8킬로미터 코스를 한 바퀴 달리는 걸 좋아하고요, 반려견과 산책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책은 어린이의 마음이 잘 드러난 동화들이고요. 최근에 읽은 것 중에는 『푸른 사자 와니니』, 『우주로 가는 계단』이 좋았습니다. 음악은 뭐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듣는 편입니다. 여전히 백창우의 동요를 좋아합니다. 시로 만든 노래들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늘 이렇게 적고 나서 보면 제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감정 기복도 좀 심하고, 하고 싶은 말을 못 참는 편이라 동료들을 저를 다혈질의 단순무식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장애인운동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1990년에 특수교육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88년 장애인올림픽을 보면서 ‘멋지다’ 정도의 마음으로 과를 선택했는데요. 학교생활을 하면서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애해방’ ‘인간해방’이 자연스러운 구호였어요. 정립회관 농성장에 갔던 일도 기억에 남고, 그 때는 특수교육과가 전국에 5개 밖에 없던 시절이라 ‘전특련’(전국특수교육과학생회연합. 장애인권과 특수교육 제도 개선을 위해 활동한 특수교육과 학생들의 연대체-편집자 주) 활동도 활발하던 시기여서 전특련 캠프도 가고, 회의로 하고 그러는 정도였습니다.
연대의 경험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90년 초반에 ‘올바른 장애인 교육을 생각하는 교사모임’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고, 전교조 특교위(특수교육위원회) 모임에 나가는 정도니까요. 그래도 420(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투쟁 때는 시간이 되면 그냥 집회 장소에 나가기도 했어요. 어느 해인가 그렇게 나갔다가 저희 학교 학부모님을 만났는데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더라고요. 선생님이 여기까지 오셨다고. 저는 장애를 가진 제자들의 문제는 내 문제이기도 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모양이지요. 요즘은 아스팔트에서 사는 제자들이 한 둘 생겨서, 그 친구들 얼굴 보러 갈 때도 있고요.
특수교사로 장애아동과 함께한다는 것
-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로 인해 특수교사로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나요?
몇 해 전에 교육과정 연수에 참석했는데 강의 중에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우리 학생들이 직업을 가지려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그냥 수강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한 발문이었을 텐데 강의 내용이 제 맘에 들지 않아 불평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던지라 불쑥 이렇게 소리를 질렀어요.
“우리 학생들이 직업을 가지려면 지역사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매우 무례한 말이긴 했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면 된다, 가르칠 수 있다’는 태도가 무의식에 가득하거든요. 중도·중복장애를 가진 우리 반 학생들에게는 너무 무심한 얘기예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달라’는 당사자들의 요구와도 배치되고요.
학교 수업이 끝나고도 치료실에서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등을 받느라 깜깜해져서야 집에 들어간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치료가 필요 없다는 건 아니지만 치료 때문에 어린이로서 그 시절에 경험해야 할 것들을 놓치는 게 저는 너무 안타까운데요. 일단은 좀 “재활”에 성공하고 나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심지어는 할 수만 있다면 아이가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부모로서의 심정을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고, 아이에게도 좋은 부모님이었지만 그런 태도를 공기처럼 마시고 자라야하는 우리 반 어린이를 생각하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의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얘기하잖아요. 부모들은 그 사회에서 장애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고요. 그런 점에서 가장 큰 벽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그건 특수교사들도 마찬가지죠.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늘 강조하니까요. 게다가 제가 특수교육을 배울 땐 ‘00장애개론’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의 특성, 이런 걸 배웠단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말도 안 되는 편견의 말들을 수업 시간에 배웠더라고요.
- 차별에 맞서 싸우는 전장연의 활동이 현장에서 피부로 와닿았던 적이 있으실까요?
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을 주로 만나고, 의사표현을 잘하는 경우도 드문 편이니까 제가 잘하고 있는지 판단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지냈는데요, 당사자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여러 목소리들이 나오니까 우리 반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내가 어떤 태도를 조심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자꾸 생각해보게 됩니다.
특히 저는 지체장애 학교에 오래 근무를 해서 과거와 지금을 견주어보면 장애운동에 빚이 많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첫 학교는 시설 안에 있는 학교였는데 소풍 때면 트럭이 따라가는 게 당연했고 지하철 타기 체험이라도 하려면 학생들 업고, 휠체어 나르고 하는 게 일이었죠. 편의시설만 생각하면 진짜 눈물 나게 고맙죠. 10여 년 전에 중학교 학생들과 수업하던 시절이 잠깐 있었는데 그 때 한참 이동권 투쟁이 한참이었거든요. 그 때 학생들과 함께 영상 보면서 이야기 나누던 기억도 있어요. 장애인콜택시, 저상버스, 활동지원사. 다 당사자들이 무릎으로 아스팔트 기어 다니고 삭발하고, 쇠사슬로 몸을 감아가며 얻어낸 거잖아요.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 훨씬 넓어졌고,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죠.
교사는 삶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제 삶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걷기만 해도 그렇죠. 저는 마라톤까지 할 정도로 잘 걸으면서 우리 반 어린이들 보행훈련을 시키면, 어린이 마음에는 ‘나는 이것 밖에 못하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사실은 죽을 만큼 힘들게 애쓰고 있는 건데 말이죠. 그런 점에서 장애인운동은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네 탓이 아니라 어른들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반 어린이들 대신 얘기해주는 것 같아요.
과거의 제가 혼자 밥 먹는 법을 가르치려고 애를 썼다면, 지금은 뭘 먹고 싶은지 표현하게 하는데 애를 쓰려고 합니다. ‘네 숟가락은 네가 쥐어야지’ 잔소리를 해댔는데 지금은 ‘먹고 싶은 게 뭔지’ 이야기해보라고 합니다. 뭐 그래도 잔소리는 많이 하지만요.

동화작가로 장애아동과 함께한다는 것
- 공진하 벽돌회원님은 동화 작가이시기도 한데, 쓰시는 동화에 장애아동이 주인공으로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혹시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동화를 쓰게 된 건, 발령을 받고 학생들과 만나면서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데 우리 반 학생들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없더라고요. 장애 어린이가 나온 동화는 죄다 장애 극복형 서사거나 엄청 불쌍하거나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써보자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운동의 구호가 아니라 재미있는 서사로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동화작가가 되고 여러 작가들과 만나면서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제가 잘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일부러 장애를 다룬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 건 아닌데, 제가 가장 잘 아는 어린이가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이니까 그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도토리 사용 설명서>의 유진이나 <벽이>의 재현이 같은 아이는 저만 아는 캐릭터니까요.
- 장애를 다루는 작품을 집필하실 때 고민하시는 지점은 어떤 건가요?
고민이라면, 얼마 전 아는 작가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어린이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게 참 어렵더라고요. 발달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제가 겪는 기쁨, 어려움, 슬픔을 어린이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가 이미 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냥 그 아이를 떠올리며 쓴 이야기인데 독자들은 그 아이의 장애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더 많은 경험이 쌓여야 하겠죠. 독자에게도, 작가에게도.
“교사는 삶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제 삶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 그런 점에서 장애인 운동은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네 탓이 아니라 어른들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반 어린이들 대신 얘기해주는 것 같아요.”
“(장애인 운동이) ‘무사히 할아버지, 할머니가 될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거기에 앞장 서 주시라고.”
장애인운동의 안정적 공간마련을 위해 1구좌(100만 원)의 후원을 해 주신 소중한 벽돌회원 인터뷰 꼭지 입니다. 네 번째 인터뷰는 수십 년동안 장애인 운동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셨던 공진하 벽돌회원님입니다. 공진하 회원님은 현장에서 장애아동과 함께 변화를 꿈꾸는 특수교사 겸 동화작가이시기도 합니다.
착하지 않은 특수교사, 순진하지 않은 동화작가, 느리고 게으른 러너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27년차 특수학교 교사입니다. 트위터 소개 글에는 ‘착하지 않은 특수교사, 순진하지 않은 동화작가, 느리고 게으른 러너’라고 적어두었습니다. 뒤에 “탈시설!!!”이라는 말도 적어두었습니다.
- 평소에 취미나 관심 있거나 좋아하시는 일은 어떤 것이 있나요?
취미라기보다 집 앞에 달리기 좋은 공원이 있어서 달리기를 가끔 합니다. 말 그대로 느리고 게으르게, 5.8킬로미터 코스를 한 바퀴 달리는 걸 좋아하고요, 반려견과 산책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책은 어린이의 마음이 잘 드러난 동화들이고요. 최근에 읽은 것 중에는 『푸른 사자 와니니』, 『우주로 가는 계단』이 좋았습니다. 음악은 뭐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듣는 편입니다. 여전히 백창우의 동요를 좋아합니다. 시로 만든 노래들이 좋더라고요.
그런데 늘 이렇게 적고 나서 보면 제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감정 기복도 좀 심하고, 하고 싶은 말을 못 참는 편이라 동료들을 저를 다혈질의 단순무식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 장애인운동은 어떻게 알게 되셨나요?
1990년에 특수교육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88년 장애인올림픽을 보면서 ‘멋지다’ 정도의 마음으로 과를 선택했는데요. 학교생활을 하면서 장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장애해방’ ‘인간해방’이 자연스러운 구호였어요. 정립회관 농성장에 갔던 일도 기억에 남고, 그 때는 특수교육과가 전국에 5개 밖에 없던 시절이라 ‘전특련’(전국특수교육과학생회연합. 장애인권과 특수교육 제도 개선을 위해 활동한 특수교육과 학생들의 연대체-편집자 주) 활동도 활발하던 시기여서 전특련 캠프도 가고, 회의로 하고 그러는 정도였습니다.
연대의 경험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90년 초반에 ‘올바른 장애인 교육을 생각하는 교사모임’에서 활동을 하기도 했고, 전교조 특교위(특수교육위원회) 모임에 나가는 정도니까요. 그래도 420(장애인차별철폐의 날) 투쟁 때는 시간이 되면 그냥 집회 장소에 나가기도 했어요. 어느 해인가 그렇게 나갔다가 저희 학교 학부모님을 만났는데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더라고요. 선생님이 여기까지 오셨다고. 저는 장애를 가진 제자들의 문제는 내 문제이기도 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부모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던 모양이지요. 요즘은 아스팔트에서 사는 제자들이 한 둘 생겨서, 그 친구들 얼굴 보러 갈 때도 있고요.
특수교사로 장애아동과 함께한다는 것
-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로 인해 특수교사로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나요?
몇 해 전에 교육과정 연수에 참석했는데 강의 중에 이런 질문을 하더라고요.
“우리 학생들이 직업을 가지려면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그냥 수강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한 발문이었을 텐데 강의 내용이 제 맘에 들지 않아 불평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던지라 불쑥 이렇게 소리를 질렀어요.
“우리 학생들이 직업을 가지려면 지역사회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매우 무례한 말이긴 했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르치면 된다, 가르칠 수 있다’는 태도가 무의식에 가득하거든요. 중도·중복장애를 가진 우리 반 학생들에게는 너무 무심한 얘기예요. 한편으로 생각하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달라’는 당사자들의 요구와도 배치되고요.
학교 수업이 끝나고도 치료실에서 물리치료, 작업치료, 언어치료 등을 받느라 깜깜해져서야 집에 들어간다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치료가 필요 없다는 건 아니지만 치료 때문에 어린이로서 그 시절에 경험해야 할 것들을 놓치는 게 저는 너무 안타까운데요. 일단은 좀 “재활”에 성공하고 나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심지어는 할 수만 있다면 아이가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들어봤습니다. 부모로서의 심정을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고, 아이에게도 좋은 부모님이었지만 그런 태도를 공기처럼 마시고 자라야하는 우리 반 어린이를 생각하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의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얘기하잖아요. 부모들은 그 사회에서 장애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인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세계로 들어오게 되었고요. 그런 점에서 가장 큰 벽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습니다. 그건 특수교사들도 마찬가지죠.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늘 강조하니까요. 게다가 제가 특수교육을 배울 땐 ‘00장애개론’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의 특성, 이런 걸 배웠단 말이죠.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말도 안 되는 편견의 말들을 수업 시간에 배웠더라고요.
- 차별에 맞서 싸우는 전장연의 활동이 현장에서 피부로 와닿았던 적이 있으실까요?
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을 주로 만나고, 의사표현을 잘하는 경우도 드문 편이니까 제가 잘하고 있는지 판단이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태로 오랫동안 지냈는데요, 당사자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여러 목소리들이 나오니까 우리 반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내가 어떤 태도를 조심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자꾸 생각해보게 됩니다.
특히 저는 지체장애 학교에 오래 근무를 해서 과거와 지금을 견주어보면 장애운동에 빚이 많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첫 학교는 시설 안에 있는 학교였는데 소풍 때면 트럭이 따라가는 게 당연했고 지하철 타기 체험이라도 하려면 학생들 업고, 휠체어 나르고 하는 게 일이었죠. 편의시설만 생각하면 진짜 눈물 나게 고맙죠. 10여 년 전에 중학교 학생들과 수업하던 시절이 잠깐 있었는데 그 때 한참 이동권 투쟁이 한참이었거든요. 그 때 학생들과 함께 영상 보면서 이야기 나누던 기억도 있어요. 장애인콜택시, 저상버스, 활동지원사. 다 당사자들이 무릎으로 아스팔트 기어 다니고 삭발하고, 쇠사슬로 몸을 감아가며 얻어낸 거잖아요. 학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 훨씬 넓어졌고,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아졌죠.
교사는 삶으로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제 삶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그런 점에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걷기만 해도 그렇죠. 저는 마라톤까지 할 정도로 잘 걸으면서 우리 반 어린이들 보행훈련을 시키면, 어린이 마음에는 ‘나는 이것 밖에 못하는구나’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사실은 죽을 만큼 힘들게 애쓰고 있는 건데 말이죠. 그런 점에서 장애인운동은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줍니다. 네 탓이 아니라 어른들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반 어린이들 대신 얘기해주는 것 같아요.
과거의 제가 혼자 밥 먹는 법을 가르치려고 애를 썼다면, 지금은 뭘 먹고 싶은지 표현하게 하는데 애를 쓰려고 합니다. ‘네 숟가락은 네가 쥐어야지’ 잔소리를 해댔는데 지금은 ‘먹고 싶은 게 뭔지’ 이야기해보라고 합니다. 뭐 그래도 잔소리는 많이 하지만요.
동화작가로 장애아동과 함께한다는 것
- 공진하 벽돌회원님은 동화 작가이시기도 한데, 쓰시는 동화에 장애아동이 주인공으로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혹시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동화를 쓰게 된 건, 발령을 받고 학생들과 만나면서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데 우리 반 학생들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없더라고요. 장애 어린이가 나온 동화는 죄다 장애 극복형 서사거나 엄청 불쌍하거나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써보자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운동의 구호가 아니라 재미있는 서사로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그리고 동화작가가 되고 여러 작가들과 만나면서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제가 잘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일부러 장애를 다룬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 건 아닌데, 제가 가장 잘 아는 어린이가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이니까 그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도토리 사용 설명서>의 유진이나 <벽이>의 재현이 같은 아이는 저만 아는 캐릭터니까요.
- 장애를 다루는 작품을 집필하실 때 고민하시는 지점은 어떤 건가요?
고민이라면, 얼마 전 아는 작가와도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어린이들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게 참 어렵더라고요. 발달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을 만나면서 제가 겪는 기쁨, 어려움, 슬픔을 어린이의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제가 이미 쓴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그냥 그 아이를 떠올리며 쓴 이야기인데 독자들은 그 아이의 장애에 집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더 많은 경험이 쌓여야 하겠죠. 독자에게도, 작가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