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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소리쳐] 다큐멘터리 '크립 캠프' 추천의 변 _ 조민제 사무국장

2020-05-12
조회수 970


미국에 ‘캠프 제네드’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장활(장애민중연대현장활동)’이 있었다.

 

 

조민제 | 장애인지역공동체 사무국장

  

나는 넷플릭스로 다큐를 자주 찾아보지 않는다. 세상 살기 빡빡하다는 이유로 단타로 볼만한 영화를 주로 보지 집에 와서까지 너무 진지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크립캠프 : 장애는 없다> 다큐를 소개하는 기사를 별 생각 없이 보다가 ‘재활법 504조’투쟁에 관한 과정이 담겨있다는 내용을 보고 곧바로 시청하게 되었다.

 

왜냐면 지난해 피플퍼스트운동(발달장애인 자기옹호운동)의 해외사례를 정리하던 중 영상을 찾아 헤매고 헤매다가 미국의 피플퍼스트운동이 탈시설운동, 미국장애인법(ADA) 제정운동 등과 연결고리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중 발견한 1970년대에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에는 영어로 ‘504’를 힘차게 외치며 투쟁하는 장애인들의 모습이 담겨있어 상당히 인상 깊게 봤었기 때문이다. 뭔 소리를 하는지 알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봤지만 영어가 짧은지라 저들이 왜 재활법 504조에 목을 매는지 이 투쟁 이후 ADA제정투쟁의 동력이 왜 되었다는 것인지 아리송했던 궁금증을 이 다큐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나는 이 다큐를 보면서 오히려 투쟁과정보다는 미국의 장애인들이 투쟁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 ‘캠프 제네드’의 영상과 회상, 인터뷰를 보면서 완전히 뿅가버렸다. 1971년에 열린 캠프 제네드에서는 장애인이 참여하는 캠프이자 히피적인 분위기로 기존의 질서에 저항하고 장애인,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자유분방하게 마음껏 토론하고 노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의 당사자 인터뷰 중에는 소아마비 장애인이 그룹을 주도하고 뇌성마비 장애인은 바닥에 있다는 당사자의 불만. 성 관련 이슈, 식사 및 이동 등 활동보조 문제에 관한 내용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내가 장애인운동에 매료되었던 이유를 다큐를 보며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놀고 그 시간을 바탕으로 투쟁의 힘을 만드는 곳. 나에게는 2004년부터 참여했던 ‘장애민중연대현장활동(장활)’이라는 일주일 남짓한 캠프가 그런 곳이었다. 당시 대학생 2학년이었던 나는 등록금을 벌기 위해 고속도로휴게소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매일 12시간씩 하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노금호 선배의 끈질긴 꼬드김과 방학이 끝난 후 떨어질 노금호 선배의 불호령이 두려워(?) 장활이 뭔지도 잘 모른 채 서울로 향하게 되었다.

 

당시 선배의 설명으로는 장활은 장애인-비장애인 대학생들이 함께 토론하고 공부하고 현장투쟁도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 설명보다 사실‘버스를 타자’는 영상에서 보던 당시의 나에게 연예인과 같던 활동가들을 구경하기 위해, 그리고 다른 지역 대학생들과 술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나했고. 그렇게 정립회관민주화투쟁 농성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는 장애이슈에 관한 다양한 토론이 즐비했고 반성폭력 규약에 대해 열띤 토론이 존재했고, 반장애폭력 규약과 시각, 청각, 지체 등 다양한 장애유형의 당사자들이 함께 의사소통을 하며 행동하기 위해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밤에 술을 먹을 수 있었다. 여러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즐겁다니! 그때 난 술맛의 의미를 처음 깨달았나보다.

 

그렇게 장활에 매료된 이후 2005년, 2006년 장활을 기획하며 다양한 현장을 다녔었다. 그 때의 경험치는 현장에서 활동을 갓 시작한 나에게 큰 자양분이 되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기 위해 고민해야하는 것들, 의사소통이나 활동보조시 필요한 지원 등에 대해 짧은 기간이었지만 치열하고 뜨겁던 그때의 경험은 지금도 현장에서 일할 때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그래서 다큐를 다 보고 난후 나는 생각했다. 다시 현장에서 장활을 하고 싶다는 생각. 이번에는 대학생을 주체로 한정짓지 않고 지역의 장애인당사자들과 장활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이다.

 

장애인운동을 하는 단체들이 점점 사업에 매몰되는 구조가 고착화된 요즘. 활동가 재생산 구조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나는 다시 생각해본다. 우리는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당사자들과 서로 지지고 볶고, 부대끼고 토론하며 진짜 동지가 되기 위해 관계를 형성하고 시간을 보내며 아래로부터 시작되는 힘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바쁘단 이유로 후순위로 미루고 있지 않는가? 다양한 이슈들과 고민들을 풀어내고 토론하며 정립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어려운 언어, 숫자로 이뤄진 정책을 나열하며 당위성을 앞세워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당시 장활에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은 장애인운동 현장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현장에서 각자의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고 있다. 오늘따라 그들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시절의 우리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대들 덕에 이렇게 장애인운동이 성장하였다고. 그대들 덕에 활동의 끈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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