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공에서 고공으로]
세 개의 하늘을 향한 연대의 편지 420 장애인차별철폐의날,
혜화동성당 종탑 위에서 보내는 박초현 대표의 편지
네 명의 노동자가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투쟁으로, 하늘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고공—서울 혜화동성당 종탑 위에서—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박초현 대표가 연대의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편지를 씁니다.
장애인도 하늘 아래 똑같은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라갔습니다. 정리해고에 맞서,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하청노동의 나쁜 굴레를 끊기 위해 싸우는 동지들께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이 땅의 모든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고공에서 고공으로 보내는 편지입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하늘을 마주보는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 구미에 계신 박정혜/소현숙 동지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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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 박초현입니다. 저는 한국천주교가 장애인은 탈시설해서 지역에서 살 능력이 없고, 시설에 살아야한다고 말해서 4월 18일 금요일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랐습니다. 오늘로 3일째입니다. 천주교는 하나님의 뜻을 시민들과 나눠야하는데, 그 시민들 중 장애인은 없나봅니다. 왜냐하면 천주교가 전국적으로 장애인 거주시설 175개를 운영하고 있어서, 시설을 계속 운영하면서 얻는 수익금과 후원금이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탑에 오른지 3일째 되었는데, 정혜동지와 현숙동지는 500일 가까이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뜨거운 햇볕과 차가운 비바람을 어떻게 그 긴 시간 견디셨나 싶고, 3일째 된 저도 이렇게 힘든데 500일 가까이 된 동지들은 얼마나 힘들까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이 편지를 써봅니다.
기사로 불탄 공장의 모습을 봤습니다. 모든 게 불타 없어진 공장의 모습을 보며, 10년 넘게 일했던 공장이 폐허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장에서 노동하며 쏟아부운 두 동지의 애정과 헌신은 불타지 않고 옥상에 남아있다는 사실에 슬펐습니다.
500일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두 동지는 무엇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셨나요? 종탑에 올라오니 건물들과 지나다니는 차들, 사람들의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하루 대부분을 채우더라고요. 그래서 심심하기도 하고, 막상 종탑 위에 올라와보니 종탑 밑에 있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답답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종탑 밑에 있었으면 여기저기 쫓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모으거나, 천주교를 설득하거나 할 수 있었을거 같거든요. 동지들은 500일 가까이 응답없는 회사를 상대로 그 곳에서 무엇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가요?
동지들이 심심해서, 답답해서, 외로워서 옥상에서 내려오고 싶으실 것 같아요. 그 동안의 시간이 정말 길게 느껴지셨을 거 같아요. 저도 종탑 위에 올라와보니 하루가 참 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긴 시간을 견디면서 투쟁하고 계신 동지들이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먼저 그 시간을 보낸 동지들이 투쟁을 아직도 포기하지 않고 계신 것이 저희에게도 힘이 됩니다. 이 고공에 함께하고 있는 동지들이 있어서 정말 든든합니다.
그래도 꼭 함께 내려갑시다. 500일이 되기 전에, 처음 고공에 올라갔던 여름이 되기 전에 꼭 땅을 밟읍시다.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희도 서울에서 연대하겠습니다. 꼭 원직복직 쟁취하시고, 꼭 노동권 쟁취하시고, 꼭 봄이 가기 전에 동료들과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갑시다.
👨🍳 세종호텔 고공농성장 고진수 동지께
🌈🥁🫶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 박초현입니다. 저는 한국천주교가 장애인은 탈시설해서 지역에서 살 능력이 없고, 시설에 살아야한다고 말해서 4월 18일 금요일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랐습니다. 오늘로 3일째입니다. 천주교는 하나님의 뜻을 시민들과 나눠야하는데, 그 시민들 중 장애인은 없나봅니다. 왜냐하면 천주교가 전국적으로 장애인 거주시설 175개를 운영하고 있어서, 시설을 계속 운영하면서 얻는 수익금과 후원금이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동지가 하루 세번 올라가 계신 곳에서 북을 두드리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희가 올라온 종탑에서는 하루에 세 번 종이 울립니다. 아침 6시, 점심 12시, 저녁 6시. 세 번 종이 울리는데요. 새벽 종소리에 잠이 깨고, 점심 12시 종이 울리면 아, 밥먹을 시간이구나 하고, 저녁 6시가 되면 이제 곧 해가 지겠구나, 곧 문화제가 시작하겠구나 합니다.
저희는 누군가가 치는 종소리를 듣는데, 고진수 동지는 하루 세 번 스스로 북을 친다는 얘기를 듣고 헉하고 놀랐습니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까먹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높이 있으면 땅에 있는 사람들의 시야에 없으니, 혹시나 잊혀질까 걱정이 돼서,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북으로나마 알리는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동지가 북을 치면 지나가던 시민들이 북소리의 시작점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동지를 찾던가요? 동지가 북을 치면 동지가 일했던, 동지를 해고했던 세종호텔 사람들이 힐끗보기는 하던가요? 저는 동지의 북소리가 지나가던 시민들의 마음에 그리고 동지를 해고한 세종호텔의 창문을 넘어 꼭 닿았으면 합니다.
고진수 동지의 투쟁 사진을 보다가 시민들의 연대 메세지가 적힌 큰 현수막이 동지 뒤로 휘날리는 모습을 봤습니다. 동지가 고공에 올라가고 다양한 깃발을 든 시민들이 찾아오기도 하더라고요. 혜화동성당 앞도 그렇습니다. 매일 저녁 성당 정문에서 동료들이 문화제를 하는데, 고진수 동지를 찾아갔던 동료들과 깃발들이 혜화동성당 정문에도 모여주시더라고요. 저는 연대시민들 덕분에 다시 한번 힘을 내곤합니다. 다시 한번 여기 올라온 의미를 되새기곤합니다. 특히 저녁 문화제가 진행되면 밤이 훌쩍 지나가곤해서 금방 새날을 맞이합니다.
동지가 고공에 올라기전부터 14년을 넘게 노동권 보장을 위해 투쟁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2009년, 마로니에 8인이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탈시설을 하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탈시설 권리 보장을 외친 지 16년이 지납니다. 동지와 우리의 투쟁이 땅 위에서도 고공에서도 장소만 달라졌을 뿐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큰 연대감을 느낍니다.
우리는 지금 둘다 같은 동지들에게 힘을 얻으며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둘다 같은 땅 위에서 투쟁하다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둘다 같은 마음으로 투쟁하고 있습니다. 고진수 동지도 고진수 동지만을 위한 투쟁이 아닌, 세종호텔의 모든 해고노동자, 그리고 어딘가에서 해고된 노동자 동지들 모두를 위해 투쟁하고 계시지요? 저도 시설에 남겨진 3만명의 동료들, 지역사회에 살지만 언젠가 시설로 등떠밀려질까 두려워하는 동료들을 위해 투쟁하고 있습니다.
같은 마음으로 고공에 오른 동지가 있어서 힘이 납니다. 혜화동성당 종탑 위에서 하루 세번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고진수 동지의 북소리를 생각할게요. 동지도 하루 세번 북을 칠 때 혜화동성당 종탑 위에 있는 우리를 생각하면서 조금이나마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동지께
🚢🗼😂
안녕하세요, 저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공동대표 박초현입니다. 저는 한국천주교가 장애인은 탈시설해서 지역에서 살 능력이 없고, 시설에 살아야한다고 말해서 4월 18일 금요일 혜화동성당 종탑에 올랐습니다. 오늘로 3일째입니다. 천주교는 하나님의 뜻을 시민들과 나눠야하는데, 그 시민들 중 장애인은 없나봅니다. 왜냐하면 천주교가 전국적으로 장애인 거주시설 175개를 운영하고 있어서, 시설을 계속 운영하면서 얻는 수익금과 후원금이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동지, 저는 25미터 고공에 있습니다. 그런데 동지는 30미터 고공에 있다고 기사를 통해 봤습니다. 25미터 고공도 아찔하고 위험한데, 30미터 고공은 얼마나 위험한가요. 여기는 그래도 텐트라도 칠 수 있는데, 다리가 저리거나 허리가 뻐근하면 눕든, 앉든, 서든 할 수 있는데, 동지는 그 좁고 높은 곳에서 어떻게 그렇게 오래 계셨나요.
사실 지난번 행진을 하면서 동지를 찾아갔습니다. 동지가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동지의 형체만 겨우 볼 수 있었습니다. 땅에서 동지를 응원하는 구호를 열심히 외쳤는데 들리셨나요?
저렇게 높은 곳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대체 어떻게 올라갔는지, 어떻게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는지 걱정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동지의 얼굴이 보고싶어서 가만히 서서 한참을 올려다봤는데 동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후에 기사로 동지의 얼굴을 봤습니다.
동지의 사진을 여러 개 봤는데 다 투쟁머리띠를 질끈 묶고 투쟁을 외치며 주먹을 치켜 올리거나, 수염도 깎지 못하고 단식투쟁을 이어가시거나, 노조 조끼를 입고 발언을 하시는 모습들이더라고요. 진짜 투쟁꾼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강인한 활동가라는 걸 말한마디 나눠보지 않았지만 사진만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저도 탈시설 과정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특히나 저의 탈시설을 반대하는 시설과 싸워야했는데요. 그 싸움을 끝내고 탈시설해서 아직 시설에 남겨진 3만명의 시설동료들과도 지역에서 만나기 위해 탈시설 운동을 함께하며 저도 진짜 투쟁꾼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진짜 투쟁꾼이라고 해서 다 고공에 올라가지 않잖아요. 저보다 훨씬 더 일찍 투쟁을 시작해서 저보다 훨씬 더 높게 올라간 동지를 보며 동지의 절박함과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20년이 넘게 장애인이 시설이 아닌 지역에서 함께 살아야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갈길이 너무 멉니다. 그래서 우리도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종탑에 올라왔습니다. 동지도 갈길이 너무 멀어보였던거죠?
저는 종탑에 올라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습니다. 함께 올라가지 못해서 미안하다, 오늘도 내려오지 못하게 해서 미안하다, 위에서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우리만 먹고 싶은 것, 맛있는 것 먹어서 미안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동지는 어떤 말을 가장 많이 들었나요? 동지는 어떤 말이 가장 필요한가요? 저는 한국천주교가 드디어 탈시설에 연대하기로 했다는 말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래야 내려갈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래야 먼 길을 또다시 걸어갈 용기가 생길 것 같거든요.
동지에게도 그런 말이 필요할까요? 진짜 사장 한화오션이 드디어 노동권을 보장하고, 노동자를 위해 힘쓰겠다. 이 말이 가장 듣고 싶을까요?
제가 그 말을 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더 웃으셨으면 좋겠어요. 사진으로만 봐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표정이 어둡고, 근심걱정이 많아 보이시더라고요. 근심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땅에 있는 동지들을 조금 더 믿고, 조금 더 짐을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어요. 이 편지를 읽으시면서 한번이라도 웃으셨으면,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고공 3일차 밖에 되지 않은 저이지만, 고공 농성 선배들을 보며 저도 힘을 내어볼게요. 우리 모두가 원하는 세상이 하루 빨리 당겨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둘 다 땅에서 만나서 밝게 웃으면서 사진 찍어요. 동지이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했을 때 밝게 웃는 사진이 한장쯤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로요.
땅위에서 만날 그날까지 제발 건강하세요. 건강엔 웃음이 보약입니다.
👨🏭👩🏭 구미에 계신 박정혜/소현숙 동지께
👨🍳 세종호텔 고공농성장 고진수 동지께
👷♂️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동지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