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성당 종탑 고공일기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래도 탈시설은 권리다>

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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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18(금) 고공농성 1일차>


나는 오늘 천주교가 탈시설에 반대하고

장애인은 시설에 살아야 한다며

시설도 거주지의 하나라고 이야기해서

답답한 마음에 혜화성당 종탑에 올랐다.

난 고소공포증이 있다. 

종탑으로 올라올때 무서웠다.

근데 막상 올라오니 괜찮다. 종탑에 난간이 없지만 성당 정문에 동료들이 지키고 있다. 든든하다.

막상 종탑에 올라오니 심심하다. 답답한 마음도

천주교가 답이 없어 아직도 답답하다.

난 천주교의 답을 기다린다.

천주교는 탈시설을 보장하라!!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선지자의 말을 마음에 새길 때가

많았습니다. 먼저 겪고, 먼저 깨달은 이들이 남긴 말엔

늘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혜화동성당 종탑을 함께 올라온 초현,

성당 아래를 지키는 규식 그리고 차마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탈시설장애인 당사자 동료들 모두가

저에게는 이 시대의 선지자였습니다.

시설에서 살아남아, 마침내 시설 문을 박차고 나와서

“탈시설은 권리다”, “아직 시설에 갇힌 3만 명의 동료들과

함께 지역에서 살자”고 눈을 빛내며 외치는 이들 앞에서,

저는 종종 생각하곤 했습니다.

‘중세의 선지자를 만난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고요.

역사는 외면당하고, 탄압받았던 선지자들의 편이었습니다.

세상이 등을 돌릴 때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미래가 그들의 말에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의 선지자들이 말합니다.

“그래도 탈시설은 권리다.”

선지자들의 외침을 따라, 탈시설의 길을 기꺼이 함께

밟아갈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도 탈시설의 길을 함께 밟길 바랍니다.



오늘 혜화동 성당 종탑 위에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박초현 대표와

서울장차연 푸름 활동가와 함께 올랐습니다.

박초현 대표가 농성을 결의하여

함께 지원하기 위해 올라왔습니다.

처음이라 많이 떨리고 무섭기도 합니다.

종탑 위 공간은 생각보다 좁도 난간도 없네요.

그렇지만 천주교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하시는

박초현 대표님을 생각하면 힘이 나기도 합니다.

탈시설권리를 짓밟고 ‘자립지원법’을 왜곡하며

조직적으로 서명운동을 벌인 천주교에 맞서

고공에서 계속 외치고 투쟁하겠습니다.

천주교는 탈시설 권리 보장하라!




<2025.04.19(토) 고공농성 2일차>



오늘은 비가 하루종일 온다.

하루종일 옷이 축축하다.

내 마음도 축축하다.

천주교는 왜 아직도 답이 없을까?

비가오니 내려가고 싶지만 안된다.

내가 여기서 내려가면 3만명의 시설동료들이

또 시설에서 이름없이 살아가야 한다.

내려가고 싶지만 시설동료들을 다시 생각해본다. 나도 여기서 내려가고 싶지만

축축하고 춥어서 내려가고 싶은데

시설동료들은 얼마나 나오고 싶을까? 생각해본다.

시설동료들을 생각하며 오늘도 힘을 내본다.


오늘 아침, 비와 바람 속에서 종탑 옥상에서 텐트를 붙잡고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생각보다 높고 좁은 이곳에서 박초현 대표님, 민푸름 활동가와 함께 작은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고공에 올라와 보니 오히려 정신이 맑아집니다. 장애인으로서, 장애인 가족으로서 이 사회와 천주교계의 외면과 왜곡이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천주교는 탈시설을 위험한 시도로 몰고, 시설을 안전한 공간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합니다.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천주교가 거주시설 수용을 회개하고, 탈시설을 ‘권리’로 선언할 때까지 멈추지 않겠습니다.


종탑 위에서 보내는 이틀째 밤입니다.

아무도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올라왔는데, 어제부터 정말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고 계십니다. 비에 젖은 성당 앞 거리에서 피켓과 깃발을 들고, 멀리서도 마음을 모아 연대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오늘 하루 외롭지 않았습니다.

종탑 위는 춥고 위험하지만, 여기서도 우리는 살아내고 있고, 연대 덕분에

살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시설 안에서 살아내고 있는 3만 명의 동지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이 밤을 버팁니다.

내일도 다 함께 잘 버티고, 잘 살아냅시다. 그리고 곧, 지역사회의 땅을 함께 밟읍시다.




<2025.04.21(월) 고공농성 4일차>


오늘은 혜화동성당 사무장이 우릴 괴롭힌다.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을 못 올리게 하고 강제퇴거 시킨다고 협박까지 한다.

강제퇴거 당할까 두렵지만 나는 3만명의 시설동료들을 생각해본다.

시설동료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외로울까 ,무서울까 생각해본다.

시설동료들을 생가하며 나는 오늘도 힘을 내고, 용기를 내 본다.

모두 다같이 지역에서 살아갈 날을 꿈꾸며 투쟁!!


오늘은 ‘62일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 투쟁이 있었습니다.

생중계를 지켜보니, 많은 동지들이 지하철 안에서 열정적으로, 절실하게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사를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언론은 장애인들이 왜 싸우는지는 말하지 않고, 지하철이 몇 분 늦었다는 사실만 부각했습니다.

계속 외쳐온 장애인 권리 예산과 7대 입법,

그리고 오세훈 서울시장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400명 원직복직을 외치는 목소리는 사라졌습니다.


세상이 원래 그런 걸까요.

때로는 야속하고, 때로는 막막하지만, 그래도 함께 싸울 수 있는 동지들이 있기에 힘이 납니다.

동지들이 현장에서 싸워주기에, 저 또한 종탑 위에서 계속 있을 수 있는 힘이 습니다.

고공 농성을 지원해주시는 모든 활동가 분들과 연대해주시는 시민분들께 감사합니다!


하느님, 저는 오늘 하루종일 당신을 섬긴다면서 거짓말을 일삼고,

물과 음식, 약마저도 차단하며 탈시설장애인을 종탑에 고립시키고,

땅에 있는 나의 동지들에 모멸감을 주는 이로 인해 괴로웠습니다.


하느님, 성경에 장애인도 당신의 자녀로, 다 같은 형제자매이자 이웃으로

시설이 아닌 지역에 살 권리가 있다, 못 박아두시지 그랬어요.

당신의 뜻을 앞세워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약자를 탄압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인간이 그렇게나 거짓과 혐오에 쉽게 매혹되는 걸 아셨으면 제대로 적어두시지 그랬어요.


하느님, 오늘은 또 일평생 당신을 섬기며 소수자의 편에 서서 가난한 이의 손을 잡고,

시설장애인에게 축복을 내리며, 사제와 신도들에게 자선사업에 그쳐서는 안된다 일갈하던 이도 데려가셨더군요.

이 때문에 저희는 교황께서 순종도 하셨으니 이제 그만 내려오라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하느님, 저는 신의 응답을 기다리고자 종탑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신을 섬긴다는 이들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느님, 대체 당신의 충실한 종들은 언제쯤 시설에 남겨진 3만명의 우리 동료들을 이웃으로 맞이하겠답니까.

시설원장인 당신의 종들은 오늘 새벽, 대체 무슨 기도를 올렸는지 저에게만 귀뜸해주시면 안됩니까.


하느님, 오늘 종탑 위로 동료들이 올려준 죽을 먹으면서 생각했어요.

사람이 사람을 시설에 가두는 이들과 다같은 당신의 자녀로 퉁쳐지는게 너무 뭣같다고요.

나는 저런 형제자매를 둔적이 없다고요.

그러니 하느님, 가족싸움 더 커지기 전에, 부디 내일이라도 저들의 기도에 응답을 주든,

천사를 내려보내 탈시설이 진리이노라 메세지를 전해주든 해주세요. 울화통이 터진답니다. 아멘.


<2025.04.22(화) 고공농성 5일차>


오늘은 혜화경찰서에서 출석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경찰서에서 받는 서류는 처음이라 떨린다.

출석 안 하면 어떻게 되는거지?

나 철장에 갇히나 이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난 미리 겁내지 않으려 마음을 다 잡아본다.

고공농성도 처음이고 경찰서에 받은 서류도 처음이라 떨리지만

나의 이 떨림이, 두려움이, 시설안에서 살아가는 동료들보다 덜 하다는것을 나는 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시설동료들을 생각하며 견뎌본다.


고공농성 5일차.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종탑 위 바닥은 젖고, 옷은 눅눅하고, 저녁이 되니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쌀쌀해졌습니다.


텐트 속에서 문득 고민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천주교가 바뀔 수 있을까?’


천주교는 여전히 말합니다. 중증장애인은 시설에서 보호받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의사표현이 어렵고, 지원이 많이 필요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시설 안에 갇혀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천주교는 생명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갇혀있는 삶은 그 자체로 폭력입니다. 


바뀌지 않는 천주교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지만, 그래도 또 한편으로는 믿고 싶습니다. 함께 싸우고, 함께 외치면 바뀔 수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 동지들과 연결되어 있으니, 우리가 원하는 세상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고.


그래서 오늘도 버팁니다. 천주교가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기를 바라며 종탑 위에서 내일을 준비합니다.


탈시설은 권리입니다.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우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고 종소리 울리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시설로 떠나시던 그 밤도

이렇게 비가 왔나요


비가 내리고 종소리 울리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단단히 잠긴 문 너머 그 밤도

이렇게 비가 왔나요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고공 위 하루를 보내요


들리지 않는 기도 같은

우리의 길잃은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결국 어딘가에 가닿겠죠


그렇게 거센 비가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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