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 권달주, 박경석, 윤종술, 최용기, 양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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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 정책실(010-4744-6573) |
배포일자 | 2024.08.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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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Bella Ciao”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마로니에 공원에 잠들다. |
붙임 | [붙임 1]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추모사 [붙임 2] <추모만평>탈시설 운동의 큰 별, 탈시설 운동의 전사 故 김진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표의 명복을 빕니다. [붙임 3]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감사 웹자보 [붙임4] 김진수 대표님 별세 소식에 해외 장애계에서 보내온 애도의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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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정 보도를 위해 노력하시는 귀 언론사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상임공동대표 권달주 / 이하 ‘전장연’)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전국규모의 장애인단체와 지역 장애인·시민사회·노동·인권·문화예술단체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회원(장비회원)으로 구성된 연대체입니다.
함께 나누는 시간: 추모제 ■ 일시 : 2024년 8월 1일(목) 오후 7시 ■ 장소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 현장라이브: https://fb.watch/tL8FshgteT/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 일시 : 2024년 8월 2일(금) 오전 10시 ■ 장소 : 서울시청(동편) ■ 현장라이브: https://fb.watch/tL8G_jzS-K/
봉안식 ■ 일시 : 2024년 8월 2일(금) 오후 5시 ■ 장소 : 마로니에공원(마로니에공원 8인 동판), 노들야학 2층 ■ 현장라이브: 현장라이브: https://fb.watch/tL8JowHIQE/
■ 공동주관 :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포장애인야학,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
3. 김진수 대표님께서 지난 7월 31일 오전 10시 경 영면에 드셨습니다. 이에 장애계는 8월 1일부터 2일까지 1박 2일동안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대표님의 유지를 이어, 끝까지 투쟁하나가겠다는 마음을 담아 장애시민장을 진행하였습니다.
- 현장 사진: https://drive.google.com/drive/folders/1d5hQ-n9phZGEwYadBWK67UPtWZz5NsmU?usp=sharing
4. 8월 1일 오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추모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탈시설장애인, 장애인 활동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정치인 등 많은 분들이 모여 고인이 좋아하시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의 삶을 돌아보고, 그의 죽음을 기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5. 8월 2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나와 고인의 영정사진과 함께 <오세훈 서울시장, 권리중심일자리 최중증장애인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 촉구! 출근길 지하철선전전 646일차>에 참여하였습니다. 이후 고인의 투쟁 현장이 새겨진 동판 앞으로 와, 그의 삶을 회고하고 유지를 이어나가며 탈시설 운동을 이어나갈 것을 약속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판에는 “자유로운 삶 시설밖으로 시설거주인 8인, 여기서 탈시설 자립생활을 외치다 2009. 06.04”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6. 고인은 30대 후반 전신마비 장애로 중도장애인이 된 이후 20년 동안 시설에서 살다가 석암재단 인권침해, 시설비리 투쟁을 함께 하며 "전사"가 되었습니다. 2009년 석암재단 시설에 함께 거주하던 7명의 동지들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겠다" 며 시설을 박차고 나와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간 노숙투쟁을 벌였습니다. 고인은 장애인도 지역에서 함께 살자고 거리에서 처음으로 외쳤던 "마로니에 8인"의 맏형이었습니다. 그의 투쟁이 있었기에 서울에 탈시설 자립생활 방안이 만들어지며 이후 탈시설제도가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질 수 있었습니다.
7. 8월 2일 오전 10시에 시작한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은 서울시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고인의 투쟁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탈시설 정책이 서울시에서 만들어졌으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탈시설한 장애당사자에게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된다며 비용절감을 이유로 장애인에 대한 시설수용, 시설감금을 정당화하며, 장애인에 대한 조직적인 시설수용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탈시설 용어를 삭제하고, 탈시설 지원 조례를 폐지하며 UN장애인권리협약과 탈시설가이드라인에 따른 아주 원칙적인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마저도 짓밟고 있습니다.
8. 고인은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가 서울시의회에서 논의되던 당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창립 2주년 기념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발언을 하셨었습니다. 고인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횡포를 막아내고, 가열찬 조례 폐지 반대 운동으로 꼭 조례 폐지를 막아내자고 하셨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오발탄처럼 엉뚱한 곳을 향해 가려 했던 자신을 지역사회에서의 탈시설 투쟁으로 이끌어준 고인에게 감사하며, 고인이 있었던 장애인 주거시설이 폐쇄되고 지원주택이 완공되어 가는데 같이 보지 못하고 보내는 마음이 찢어진다는 추모사를 전했습니다.
9. 지역사회에 탈시설한 고인의 활동은 본격적으로 장애인 권리의 전사로 함께 했습니다. 김포 지역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장이었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석열 정부의 탈시설 탄압에 맞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로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2022년 6월 9일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해 삭발투쟁을 직접 하기도 했습니다. 이 적극적인 고인의 활동은 여러 장애인운동 활동가의 힘이 되었고,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 활동을 인정받아 2021년 정태수상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진수 대표 약력> 1950년 7월 21일 출생 1963년 2월 용산초등학교 졸업 2007년 11월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결성 2008년 7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 2009년 3월 제7회 석암재단생활인비상대책위원회 정태수상 수상 2009년 6월 4일 시설퇴소 후 탈시설자립생활정책을 요구하며 62일간 노숙농성 다큐멘터리 『시설장애인의 역습(2009, 박종필감독)』 출연 2012년 7월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운영위원 및 동료상담가 활동 2015년 3월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소장 2016년 8월 김포장애인야학 교장 2017년 3월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2017년 3월 사)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사 2019년 ~ 2023년 2월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2021년 3월 제19회 정태수상 수상 2022년 탈시설장애인당 후보 2022년 3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 2023년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고문 2024년 7월 31일 오전 10시 경 영면 |
10. 8월 2일 오후 5시 봉안식은 고인을 추모하며,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Bella Ciao(사랑하는 이여, 안녕)”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를 추모했습니다. ”Bella Ciao”는 “사랑하는 동지여, 안녕. 내가 싸우다 죽으면 높은 곳에 묻어주세요. 거기서 꽃이 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제 투쟁을 기억하겠지요”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모두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게끔 열심히 투쟁해봅시다”라며 시설수용 종식을 위해 투쟁한 고인을 기억하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 근처에 고인을 모셨습니다.
11. 고인의 유골함은 탈시설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나와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운동이 되고 투쟁이 되는, 지역사회를 바꾸어가는 공간인 노들장애인야학에 안치되었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에는 2008년 석암재단에서 나온 장애인들이 탈시설 자립생활을 요구하며 마로니에 공원 노숙 농성을 할 당시,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평원재를 무상으로 제공한 이종각,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김호식, 차별에 저항한 영상활동가 박종필, 장애등급제로 인해 화마로 돌아가신 송국현, 장애해방운동가 정태수 열사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고인이 소장으로 근무하시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도 추모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12.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Bella Ciao” 사랑하는 김진수 대표의 투쟁을 기억하며, 지역사회에서의 탈시설 권리로 장애계의 투쟁을 이끌어준 그의 삶을 기억하며 시설수용 종식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13. 귀 언론사의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를 요청 드립니다.
[붙임 1]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추모사
진수 형님,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우리는 2008년 1월 4일, 석암재단 베데스다요양원 시설비리 인권침해 투쟁 기자회견으로 양천구청에서 처음 만났지요.
형님, 그때 만남에 대해 2022년 1월 7일에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더군요.
“내가 활동한 것이 박경석의 꼬임에 속아서 활동한 지 15년이 되었는데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활동한 것은 힘은 들었지만 내가 좋아서 활동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다. 집회나 기자회견에 나가면 모든 동지들을 만날 수가 있어서 힘이 부칠 때에나 몸이 아플 때에도 동지들을 만나면 아프던 것도 잊어 버려서 너무 좋았다.
내가 언제까지 활동할지는 몰라도 힘이 있는 그때까지 할 것이다. 이동권, 탈시실지원법 제정,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제정이 되고, 전국에 있는 시설이 모두 폐쇄되는 그때까지 언제 될지 몰라도~. 모든 것이 다 되는 그날까지 힘이 있는 그날까지 동지들과 같이 투쟁할 것입니다. 투쟁. 투쟁!”
형님이 남기신 글을 오늘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나 형님 가시는 마당에 말씀을 바로 드리려 합니다.
형님, 그때 제가 형님을 꼬신 것이 아니라 형님의 꼬임에 제가 빠졌잖아요. 맞잖아요.
형님, 제가 그때 솔직히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저는 형님이 꼬신 그 투쟁을 피할 수만 있었다면 대충 시늉만 하고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다’고 하면서 함께 했던 동지들에게서 살짝 도망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대충 시늉만 하려 했던 마음을 이제 가시는 형님께 말씀드리지 않고서는 못 보내드릴 것 같아 고백합니다.
죄송했습니다. 더 진심을 다해 함께 하지 못했던 저의 이중적인 마음을 너그럽게 웃어주시고 한번 봐주십시오.
그런데 형님. 저는 형님 만나기 전까지 오발탄 같았던 장애인운동을 답습하였답니다. 그리고 애써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탈시설권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1988년에 장애인운동을 만났습니다. 그때 장애인운동은 빨갱이 같은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불쌍해하고 장애를 부끄러워했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는지, 어머니의 눈물 속에 재가장애인으로 헤매다 비장애인처럼 살기 위해 뒤척였던 세월이 허망하고, 제 삶이 허망한 삶의 부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형님은 1987년에 사고를 당하고, 1989년에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베데스다요양원으로 들어가셨더군요.
저는 운명처럼, 그리고 연인처럼 1993년에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 장애인운동을 풍경화 그림처럼 하려 했습니다.
그때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와 시설비리 척결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장애인거주시설 그 자체가 감옥이고 중증장애인들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라는 형님과 같은 부류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었답니다.
그러나 형님. 그러니까, 형님께서 2009년 6월 4일 ‘마로니에 8인’의 대빵이 되어 베데스다요양원에서 탈출하여 마로니에공원에 거주시설에서 살던 가구들을 하나하나 부려놓을 때 제 눈앞은 캄캄하였답니다.
모세 같았던 형님께서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땅으로 가자며 동료 7인을 꼬셔서 탈출했는데 그 앞에는 홍해가 있었고 40년의 광야 생활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형님께서 ‘시설은 감옥 같다. 밖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사람 사는 게 아니냐’며 홍해 앞에서, 메마른 사막 같은 광야 앞에서 두려워 떨며 피하려 했던 저에게 탈시설이 도화지에 그리는 그림의 종류가 아니라 치열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답니다.
“목소리 없는 자란 없다. 단지 듣지 않는 자, 듣지 않으려는 자만 있다.” (고병권, 《묵묵》)
형님, 죄송합니다.
저는 듣지 않았고 듣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오발탄처럼 엉뚱한 곳을 향해 가려 했던 것 같아요.
형님이 싸워오신 그 길과 역사는 바로 지역사회였습니다.
형님이 계셨던 장애인거주시설 베데스다요양원은 투쟁의 과정에서 ‘향유의집’으로 개명되었고 드디어 2021년에 폐쇄되었잖습니까.
그리고 김정하 동지가 형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폐쇄된 그 공간에는 ‘여기가’라는 장애인지원주택이 건설되고 있잖습니까.
‘여기가’는 2025년 2월에 완공이 된다고 합니다. 그 완공을 같이 보지 못하고 보내는 지금이 너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픕니다.
형님. 형님은 나의 모세입니다. 알지 못했던 것, 아니 어렴풋하게 알고 있지만 보지 않으려 했고 피했던 진실을 알게 해주었답니다.
듣지 않으려 했는데 투쟁으로 들려주었습니다. 광야에서 헤매고 불평할 때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형님.
[붙임 2] <추모만평>탈시설 운동의 큰 별, 탈시설 운동의 전사 故 김진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표의 명복을 빕니다.
2024년 7월 31일, 우리는 가장 소중한 탈시설 운동의 벗이자 전사를 잃었습니다. 김진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표가 영면하시게 되었습니다.
고인은 탈시설 운동의 시작이었고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30대 후반 전신마비 장애로 중도장애인이 된 고인은 이후 20년 동안 시설에서 살다가 석암재단 인권침해, 시설비리 투쟁을 함께 하며 "전사"가 되었습니다.
2009년 석암재단 시설에 함께 거주하던 7명의 동지들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겠다" 며 시설을 박차고 나와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간 노숙투쟁을 벌였습니다. 고인은 장애인도 지역에서 함께 살자고 거리에서 처음으로 외쳤던 "마로니에 8인"의 맏형이었습니다. 그의 투쟁이 있었기에 서울에 탈시설 자립생활 방안이 만들어지며 이후 탈시설제도가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질 수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에 탈시설한 고인의 활동은 본격적으로 장애인 권리의 전사로 함께 했습니다. 김포 지역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장이었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석열 정부의 탈시설 탄압에 맞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로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2022년 6월 9일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해 삭발투쟁을 직접 하기도 했습니다. 이 적극적인 고인의 활동은 여러 장애인운동 활동가의 힘이 되었고,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 활동을 인정받아 2021년 정태수상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난 고인을 쉽게 보낼 수 없습니다. 고인이 남겼던 탈시설운동의 자취를 아로 새기며 고인이 바랐던 탈시설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계속 투쟁하겠습니다.
전사여, 편히 쉬세요. 산자는 차별과 배제 없는 세상을 반드시 만들어가겠습니다.
그림 : 피델체
[붙임 3]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감사 웹자보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직은 그가 없는 하루의 시작이 믿기지 않지만, 벌써 부터 많이 그리울것이 라는 것을 알지만, 다시금 다짐하는 우리.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모두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게끔 열심히 투쟁해봅시다”라는 고인의 뜻을 이어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자리에 김진수대표님도 함께 해주시겠지요.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그 곁에 있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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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포장애인야학,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사)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일동>
[붙임4] 김진수 대표님 별세 소식에 해외 장애계에서 보내온 애도의 인사들
오딜리아 피투시(UN CRPD 위원)
고인의 평온한 안식을 바랍니다. 조의를 표합니다.
거트루드 페포아메(UN CRPD 위원)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고인의 뜻이 저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진수님의 영혼이 완전한 안식을 취하시길. 많이 힘드실 가족과 친구들도 힘내시고 위안을 얻으시길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카테린느 페드레로스(UN CRPD 사무국)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장애운동 리더를 잃은 슬픔에 저도 연대합니다. 애도의 시간, 여러분에게 평화와 힘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스티븐 앨런(발리더티 재단 공동대표)
소식 접하고 너무 슬펐습니다. 저희의 진심어린 애도를 표합니다.
김진수 대표님의 활동과 리더쉽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그 분이 남기신 유산들은 많은 당사자 활동가들 및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의 활동에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외의 더 많은 분들의 강력한 활동 속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연대를 전합니다.
말라니 로틴술루(아세안장애포럼 사무총장/인도네시아장애여성연합 대표)
아세안장애포럼과 아태장애여성모임을 대표하여 김진수 대표님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고인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하며, 고인의 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용기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고인의 강인함은 저희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자넷 도티(전 피플퍼스트뉴질랜드 활동가/뉴질랜드 시설수용 진상규명 집행부처 상임고문)
한국의 장애운동 활동가들께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의 리더들이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떠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 권달주, 박경석, 윤종술, 최용기, 양영희
전화 02-739-1420 | 팩스02-6008-5101 | 메일 sadd@daum.net | 홈페이지 sadd.or.kr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알림
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식 일정/입장 발표 텔레그램: https://t.me/sadd420
2) 전장연TV, 각종 SNS: @sadd420
”Bella Ciao”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마로니에 공원에 잠들다.
[붙임 2] <추모만평>탈시설 운동의 큰 별, 탈시설 운동의 전사 故 김진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표의 명복을 빕니다.
[붙임 3]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감사 웹자보
[붙임4] 김진수 대표님 별세 소식에 해외 장애계에서 보내온 애도의 인사들
1. 공정 보도를 위해 노력하시는 귀 언론사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상임공동대표 권달주 / 이하 ‘전장연’)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장애인의 기본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전국규모의 장애인단체와 지역 장애인·시민사회·노동·인권·문화예술단체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회원(장비회원)으로 구성된 연대체입니다.
함께 나누는 시간: 추모제
■ 일시 : 2024년 8월 1일(목) 오후 7시
■ 장소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 현장라이브: https://fb.watch/tL8FshgteT/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 일시 : 2024년 8월 2일(금) 오전 10시
■ 장소 : 서울시청(동편)
■ 현장라이브: https://fb.watch/tL8G_jzS-K/
봉안식
■ 일시 : 2024년 8월 2일(금) 오후 5시
■ 장소 : 마로니에공원(마로니에공원 8인 동판), 노들야학 2층
■ 현장라이브: 현장라이브: https://fb.watch/tL8JowHIQE/
■ 공동주관 :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포장애인야학,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3. 김진수 대표님께서 지난 7월 31일 오전 10시 경 영면에 드셨습니다. 이에 장애계는 8월 1일부터 2일까지 1박 2일동안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대표님의 유지를 이어, 끝까지 투쟁하나가겠다는 마음을 담아 장애시민장을 진행하였습니다.
4. 8월 1일 오후 7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추모제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탈시설장애인, 장애인 활동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정치인 등 많은 분들이 모여 고인이 좋아하시던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의 삶을 돌아보고, 그의 죽음을 기리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5. 8월 2일 오전 8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나와 고인의 영정사진과 함께 <오세훈 서울시장, 권리중심일자리 최중증장애인노동자 400명 해고 철회 촉구! 출근길 지하철선전전 646일차>에 참여하였습니다. 이후 고인의 투쟁 현장이 새겨진 동판 앞으로 와, 그의 삶을 회고하고 유지를 이어나가며 탈시설 운동을 이어나갈 것을 약속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판에는 “자유로운 삶 시설밖으로 시설거주인 8인, 여기서 탈시설 자립생활을 외치다 2009. 06.04”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6. 고인은 30대 후반 전신마비 장애로 중도장애인이 된 이후 20년 동안 시설에서 살다가 석암재단 인권침해, 시설비리 투쟁을 함께 하며 "전사"가 되었습니다. 2009년 석암재단 시설에 함께 거주하던 7명의 동지들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겠다" 며 시설을 박차고 나와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간 노숙투쟁을 벌였습니다. 고인은 장애인도 지역에서 함께 살자고 거리에서 처음으로 외쳤던 "마로니에 8인"의 맏형이었습니다. 그의 투쟁이 있었기에 서울에 탈시설 자립생활 방안이 만들어지며 이후 탈시설제도가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질 수 있었습니다.
7. 8월 2일 오전 10시에 시작한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은 서울시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고인의 투쟁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탈시설 정책이 서울시에서 만들어졌으나, 오세훈 서울시장은 탈시설한 장애당사자에게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된다며 비용절감을 이유로 장애인에 대한 시설수용, 시설감금을 정당화하며, 장애인에 대한 조직적인 시설수용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탈시설 용어를 삭제하고, 탈시설 지원 조례를 폐지하며 UN장애인권리협약과 탈시설가이드라인에 따른 아주 원칙적인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마저도 짓밟고 있습니다.
8. 고인은 탈시설 지원조례 폐지가 서울시의회에서 논의되던 당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창립 2주년 기념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발언을 하셨었습니다. 고인은 오세훈 서울시장의 횡포를 막아내고, 가열찬 조례 폐지 반대 운동으로 꼭 조례 폐지를 막아내자고 하셨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는 오발탄처럼 엉뚱한 곳을 향해 가려 했던 자신을 지역사회에서의 탈시설 투쟁으로 이끌어준 고인에게 감사하며, 고인이 있었던 장애인 주거시설이 폐쇄되고 지원주택이 완공되어 가는데 같이 보지 못하고 보내는 마음이 찢어진다는 추모사를 전했습니다.
9. 지역사회에 탈시설한 고인의 활동은 본격적으로 장애인 권리의 전사로 함께 했습니다. 김포 지역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장이었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석열 정부의 탈시설 탄압에 맞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로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2022년 6월 9일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해 삭발투쟁을 직접 하기도 했습니다. 이 적극적인 고인의 활동은 여러 장애인운동 활동가의 힘이 되었고,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 활동을 인정받아 2021년 정태수상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진수 대표 약력>
1950년 7월 21일 출생
1963년 2월 용산초등학교 졸업
2007년 11월 석암재단 생활인 인권쟁취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결성
2008년 7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
2009년 3월 제7회 석암재단생활인비상대책위원회 정태수상 수상
2009년 6월 4일 시설퇴소 후 탈시설자립생활정책을 요구하며 62일간 노숙농성
다큐멘터리 『시설장애인의 역습(2009, 박종필감독)』 출연
2012년 7월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운영위원 및 동료상담가 활동
2015년 3월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부소장
2016년 8월 김포장애인야학 교장
2017년 3월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2017년 3월 사)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사
2019년 ~ 2023년 2월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2021년 3월 제19회 정태수상 수상
2022년 탈시설장애인당 후보 2022년 3월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
2023년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고문
2024년 7월 31일 오전 10시 경 영면
10. 8월 2일 오후 5시 봉안식은 고인을 추모하며,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Bella Ciao(사랑하는 이여, 안녕)” 노래를 함께 부르며 그를 추모했습니다. ”Bella Ciao”는 “사랑하는 동지여, 안녕. 내가 싸우다 죽으면 높은 곳에 묻어주세요. 거기서 꽃이 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고 제 투쟁을 기억하겠지요”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모두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게끔 열심히 투쟁해봅시다”라며 시설수용 종식을 위해 투쟁한 고인을 기억하기 위해 마로니에 공원 근처에 고인을 모셨습니다.
11. 고인의 유골함은 탈시설장애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나와서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운동이 되고 투쟁이 되는, 지역사회를 바꾸어가는 공간인 노들장애인야학에 안치되었습니다. 노들장애인야학에는 2008년 석암재단에서 나온 장애인들이 탈시설 자립생활을 요구하며 마로니에 공원 노숙 농성을 할 당시, 서울 종로구 명륜동에 평원재를 무상으로 제공한 이종각, 노들장애인야학 학생 김호식, 차별에 저항한 영상활동가 박종필, 장애등급제로 인해 화마로 돌아가신 송국현, 장애해방운동가 정태수 열사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고인이 소장으로 근무하시던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도 추모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12.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Bella Ciao” 사랑하는 김진수 대표의 투쟁을 기억하며, 지역사회에서의 탈시설 권리로 장애계의 투쟁을 이끌어준 그의 삶을 기억하며 시설수용 종식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13. 귀 언론사의 적극적인 취재와 보도를 요청 드립니다.
[붙임 1]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공동대표 추모사
진수 형님, 너무 고맙습니다. 그리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형님, 우리는 2008년 1월 4일, 석암재단 베데스다요양원 시설비리 인권침해 투쟁 기자회견으로 양천구청에서 처음 만났지요.
형님, 그때 만남에 대해 2022년 1월 7일에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더군요.
“내가 활동한 것이 박경석의 꼬임에 속아서 활동한 지 15년이 되었는데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활동한 것은 힘은 들었지만 내가 좋아서 활동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다. 집회나 기자회견에 나가면 모든 동지들을 만날 수가 있어서 힘이 부칠 때에나 몸이 아플 때에도 동지들을 만나면 아프던 것도 잊어 버려서 너무 좋았다.
내가 언제까지 활동할지는 몰라도 힘이 있는 그때까지 할 것이다. 이동권, 탈시실지원법 제정,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제정이 되고, 전국에 있는 시설이 모두 폐쇄되는 그때까지 언제 될지 몰라도~. 모든 것이 다 되는 그날까지 힘이 있는 그날까지 동지들과 같이 투쟁할 것입니다. 투쟁. 투쟁!”
형님이 남기신 글을 오늘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나 형님 가시는 마당에 말씀을 바로 드리려 합니다.
형님, 그때 제가 형님을 꼬신 것이 아니라 형님의 꼬임에 제가 빠졌잖아요. 맞잖아요.
형님, 제가 그때 솔직히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저는 형님이 꼬신 그 투쟁을 피할 수만 있었다면 대충 시늉만 하고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우리의 한계다’고 하면서 함께 했던 동지들에게서 살짝 도망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대충 시늉만 하려 했던 마음을 이제 가시는 형님께 말씀드리지 않고서는 못 보내드릴 것 같아 고백합니다.
죄송했습니다. 더 진심을 다해 함께 하지 못했던 저의 이중적인 마음을 너그럽게 웃어주시고 한번 봐주십시오.
그런데 형님. 저는 형님 만나기 전까지 오발탄 같았던 장애인운동을 답습하였답니다. 그리고 애써 불편한 진실을 감추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탈시설권리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1988년에 장애인운동을 만났습니다. 그때 장애인운동은 빨갱이 같은 사람이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를 불쌍해하고 장애를 부끄러워했었습니다.
저는 운이 좋았는지, 어머니의 눈물 속에 재가장애인으로 헤매다 비장애인처럼 살기 위해 뒤척였던 세월이 허망하고, 제 삶이 허망한 삶의 부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형님은 1987년에 사고를 당하고, 1989년에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 베데스다요양원으로 들어가셨더군요.
저는 운명처럼, 그리고 연인처럼 1993년에 노들장애인야학을 만나 장애인운동을 풍경화 그림처럼 하려 했습니다.
그때는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와 시설비리 척결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장애인거주시설 그 자체가 감옥이고 중증장애인들에게 가해지는 인권침해라는 형님과 같은 부류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었답니다.
그러나 형님. 그러니까, 형님께서 2009년 6월 4일 ‘마로니에 8인’의 대빵이 되어 베데스다요양원에서 탈출하여 마로니에공원에 거주시설에서 살던 가구들을 하나하나 부려놓을 때 제 눈앞은 캄캄하였답니다.
모세 같았던 형님께서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땅으로 가자며 동료 7인을 꼬셔서 탈출했는데 그 앞에는 홍해가 있었고 40년의 광야 생활이 있다는 것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형님께서 ‘시설은 감옥 같다. 밖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사람 사는 게 아니냐’며 홍해 앞에서, 메마른 사막 같은 광야 앞에서 두려워 떨며 피하려 했던 저에게 탈시설이 도화지에 그리는 그림의 종류가 아니라 치열한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였답니다.
“목소리 없는 자란 없다. 단지 듣지 않는 자, 듣지 않으려는 자만 있다.” (고병권, 《묵묵》)
형님, 죄송합니다.
저는 듣지 않았고 듣지 않으려 했던 것 같아요. 오발탄처럼 엉뚱한 곳을 향해 가려 했던 것 같아요.
형님이 싸워오신 그 길과 역사는 바로 지역사회였습니다.
형님이 계셨던 장애인거주시설 베데스다요양원은 투쟁의 과정에서 ‘향유의집’으로 개명되었고 드디어 2021년에 폐쇄되었잖습니까.
그리고 김정하 동지가 형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폐쇄된 그 공간에는 ‘여기가’라는 장애인지원주택이 건설되고 있잖습니까.
‘여기가’는 2025년 2월에 완공이 된다고 합니다. 그 완공을 같이 보지 못하고 보내는 지금이 너무 가슴이 찢어지게 아픕니다.
형님. 형님은 나의 모세입니다. 알지 못했던 것, 아니 어렴풋하게 알고 있지만 보지 않으려 했고 피했던 진실을 알게 해주었답니다.
듣지 않으려 했는데 투쟁으로 들려주었습니다. 광야에서 헤매고 불평할 때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형님.
[붙임 2] <추모만평>탈시설 운동의 큰 별, 탈시설 운동의 전사 故 김진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표의 명복을 빕니다.
2024년 7월 31일, 우리는 가장 소중한 탈시설 운동의 벗이자 전사를 잃었습니다. 김진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표가 영면하시게 되었습니다.
고인은 탈시설 운동의 시작이었고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30대 후반 전신마비 장애로 중도장애인이 된 고인은 이후 20년 동안 시설에서 살다가 석암재단 인권침해, 시설비리 투쟁을 함께 하며 "전사"가 되었습니다.
2009년 석암재단 시설에 함께 거주하던 7명의 동지들과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겠다" 며 시설을 박차고 나와 마로니에공원에서 62일간 노숙투쟁을 벌였습니다. 고인은 장애인도 지역에서 함께 살자고 거리에서 처음으로 외쳤던 "마로니에 8인"의 맏형이었습니다. 그의 투쟁이 있었기에 서울에 탈시설 자립생활 방안이 만들어지며 이후 탈시설제도가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질 수 있었습니다.
지역사회에 탈시설한 고인의 활동은 본격적으로 장애인 권리의 전사로 함께 했습니다. 김포 지역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소장이었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윤석열 정부의 탈시설 탄압에 맞서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공동대표로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습니다. 2022년 6월 9일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위해 삭발투쟁을 직접 하기도 했습니다. 이 적극적인 고인의 활동은 여러 장애인운동 활동가의 힘이 되었고,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 활동을 인정받아 2021년 정태수상 수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떠난 고인을 쉽게 보낼 수 없습니다. 고인이 남겼던 탈시설운동의 자취를 아로 새기며 고인이 바랐던 탈시설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계속 투쟁하겠습니다.
전사여, 편히 쉬세요. 산자는 차별과 배제 없는 세상을 반드시 만들어가겠습니다.
그림 : 피델체
[붙임 3]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감사 웹자보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직은 그가 없는 하루의 시작이 믿기지 않지만, 벌써 부터 많이 그리울것이 라는 것을 알지만, 다시금 다짐하는 우리.
“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이 모두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같이 살게끔 열심히 투쟁해봅시다”라는 고인의 뜻을 이어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있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자리에 김진수대표님도 함께 해주시겠지요. 시설수용에 저항한 탈시설장애인 김진수 장애시민장. 그 곁에 있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관련 언론기사 스크랩 보기>: https://sadd420.notion.site/f2e3975c9c424e71a4344569d4af773b?pvs=4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김포장애인야학,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사)전국장애인야학협의회,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경기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일동>
[붙임4] 김진수 대표님 별세 소식에 해외 장애계에서 보내온 애도의 인사들
오딜리아 피투시(UN CRPD 위원)
고인의 평온한 안식을 바랍니다. 조의를 표합니다.
거트루드 페포아메(UN CRPD 위원)
너무나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고인의 뜻이 저희와 함께 할 것입니다. 진수님의 영혼이 완전한 안식을 취하시길. 많이 힘드실 가족과 친구들도 힘내시고 위안을 얻으시길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카테린느 페드레로스(UN CRPD 사무국)
소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 장애운동 리더를 잃은 슬픔에 저도 연대합니다. 애도의 시간, 여러분에게 평화와 힘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스티븐 앨런(발리더티 재단 공동대표)
소식 접하고 너무 슬펐습니다. 저희의 진심어린 애도를 표합니다.
김진수 대표님의 활동과 리더쉽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됩니다. 그 분이 남기신 유산들은 많은 당사자 활동가들 및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의 활동에 함께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 외의 더 많은 분들의 강력한 활동 속에서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연대를 전합니다.
말라니 로틴술루(아세안장애포럼 사무총장/인도네시아장애여성연합 대표)
아세안장애포럼과 아태장애여성모임을 대표하여 김진수 대표님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고인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하며, 고인의 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용기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고인의 강인함은 저희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깊은 애도를 전합니다.
자넷 도티(전 피플퍼스트뉴질랜드 활동가/뉴질랜드 시설수용 진상규명 집행부처 상임고문)
한국의 장애운동 활동가들께 애도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의 리더들이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떠난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입니다.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